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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라비아 상인'과의 천궁2 밀당...'호구' 되지 않으려 원팀 됐다
    • 작성자 : 유정아
    • 등록일 : 2025-11-11 15:51:57

    조회수 : 5

  • 천궁2는 천궁의 성능을 개량한 미사일로 탄도미사일까지 요격할 수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천궁2는 천궁의 성능을 개량한 미사일로 탄도미사일까지 요격할 수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한국형 패트리엇' 천궁 스토리<4>

    천궁과의 3번째 만남은 천궁2의 아랍에미리트(UAE) 수출 때 이뤄졌다. 천궁2는 천궁의 성능을 개량한 업그레이드 미사일이다. 천궁이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요격하는 무기였다면, 천궁2는 거기에 더해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탄도미사일까지 막을 수 있다.

    UAE가 천궁2에 관심을 보이자 2020년쯤부터 우리 방산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접촉하여 수출 논의를 시작했다. 이후 2021년 3월쯤 상당히 구체적인 협상의 진전이 있었다. 필자는 2020년 12월 말 제11대 방위사업청장에 임명되었고, 즉시 우리 방산 장비의 해외 수출 전선에 뛰어들었다.

    초기 협상 단계에서 우리 방산기업은 완전한 원팀의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천궁2는 전투지휘소와 유도탄 생산기업인 LIG넥스원, 다기능레이더 생산기업인 한화시스템, 발사대 생산기업인 한화디펜스(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3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모두 기술 수준과 제조 능력이 출중한 기업들이다.

    그런데, 협상상대인 UAE는 만만하지 않았다. UAE 측은 초기협상과정에서는 천궁2의 구성품과 기술적 특성에 대해 면밀하게 파악하고, 기술이전과 산업 협력에 집중하였다. 우리도 수출 성사를 위해 윈-윈 협력 전략을 적용하며 협상에 임했다. 수개월에 걸친 '밀당'으로 기술이전 협상은 구체화되었다. 양국 간 기술 격차 등을 고려할 때 상호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협상이 이뤄졌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2021년 8월부터 진행된 가격 협상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기술이전에 주로 관심을 보였던 UAE 측은 1,200년여 전 신드바드의 모험과 아라비안나이트에서 나올 법한 노회한 상인 기질을 드러냈다. 통상 LIG넥스원을 주 계약자로 하고 나머지 2개 업체는 협력업체가 돼 일괄 계약을 맺었으나 UAE는 각 핵심 구성 장비를 구분하여 3개 업체와 개별 계약을 맺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가격 협상 기한을 못 박았고, 11월 중순 개최될 두바이 에어쇼에서 우선협상 대상기업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2023년 11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개막한 '두바이 에어쇼'에 참가한 이탈리아 공군 곡예비행단 '프레체 트리콜로리'가 비행하고 있다. 두바이=AP 뉴시스

    2023년 11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개막한 '두바이 에어쇼'에 참가한 이탈리아 공군 곡예비행단 '프레체 트리콜로리'가 비행하고 있다. 두바이=AP 뉴시스

    여기에 갑자기 이스라엘 기업이 턱없이 낮은 가격을 제시하며 경쟁자로 등장하였다. 성능 면에선 천궁2가 월등한 수준이었지만, 이스라엘 제품 가격이 워낙 낮아 우리 입장에선 적잖이 신경 쓰였다. 우리와 집중 접촉했던 UAE 측이 협상의 문을 열어주자 이스라엘은 공군 참모총장, 그리고 총리까지 나서서 UAE를 방문하고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였다. 이스라엘 공군 참모총장은 UAE 공군 참모총장과 영국 국방대 최고위 과정 동기로서 매우 막역한 사이였다.


     

    천궁2의 UAE 수출에 경쟁자로 뛰어든 이스라엘...'K방산 원팀'의 전략은?

    이스라엘 정보국 모사드도 정보 지원으로 협상을 돕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중동 정세는 이스라엘과 주변 이슬람 국가 간 화해 협력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UAE와 협상 중인 천궁2의 수출 총물량은 무려 4조 원대였다. 단일 계약으로는 당시까지 최대 규모였던 수출을 성사시키기 위해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모사드 로고. 이스라엘 정부

    모사드 로고. 이스라엘 정부


    2021년 11월 UAE 두바이 에어쇼 개최 첫날. 두바이 시내 음식점에 필자를 비롯하여 천궁2 생산에 참여하는 우리 방산기업 대표와 주요 임원들이 모두 모였다. UAE 측에 최종 가격을 제시하기 위해서였다. 수차례에 걸친 상호 방문과 협상을 통해 어느 정도 신뢰 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UAE 측이 무엇을 원하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다만 미흡한 부분은 가격이었다.

    필자는 UAE 측이 제시할 수 있는 가격 최대치를 구체적으로 파악했고, 그 가격을 우리 기업들이 수용할 수 있는지 최종 판단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2012년 천궁1 양산 및 천궁2 성능 개량을 주도했던 경험이 있기에 필자는 각 주요 체계의 세부 원가 구성도 알고 있는 상태였으나 “원가 구성을 세세히 알고 있다”는 정도만 이야기하고 회의를 주관했다. 업체 간 자율적 논의는 3시간가량 진행됐고, 주요 무기 체계별로 UAE 측과 논의된 이윤율의 차이를 공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격렬한 토론 끝에 모두 조금씩 양보하면서 UAE 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최대치에 근접한 가격에 합의하였다. 그날 필자는 UAE 협상 최고 책임자에게 그 가격을 제시하였고, 일주일 후 두바이 에어쇼가 끝나자 UAE는 천궁2를 우선 협상 대상으로 선정하였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그 자리에 함께했던 자랑스러운 방산기업들의 대표 및 주요 임원들이 지금도 우리 방산기업을 이끌고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다. 온갖 풍상을 겪으며 국익을 지킨 주인공들이다. 이들이 K방산의 저력이자 굳건한 기반이다.

     

    한때 '비리 온상' 낙인...트라우마 딛고 꽃피운 K방산

    지금은 K방산의 성과로 온갖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지만 방위사업청은 한동안 통영함으로 대표되는 방산 비리, 전방위적으로 이어진 수사와 감사 등으로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 작업에 투입되지 못했던 통영함의 음파탐지기 납품 비리가 불거졌고, 대통령과 청와대로 향하던 비난의 화살이 온통 방사청과 방산 분야로 향했다.

    2014년 11월 26일 부산 근해에서 해군 수상함구조함인 통영함이 항해 시연을 하고 있다. 통영함의 음파탐지기 납품 비리가 불거지면서 방산 분야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가 진행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4년 11월 26일 부산 근해에서 해군 수상함구조함인 통영함이 항해 시연을 하고 있다. 통영함의 음파탐지기 납품 비리가 불거지면서 방산 분야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가 진행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4년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방산비리는 이적행위이며 일벌백계 차원에서 강력히 척결해 그 뿌리를 뽑을 것”이라고 천명하면서 방산 비리에 관한 수사·조사·감사가 경쟁적으로 시작되었다. 같은 해 11월 서울중앙지검에 수십 명의 검사와 수사관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의 ‘방산비리합동수사단’이 설치되었고, 해군 사업을 중심으로 비리가 있다는 전제하에 마구잡이식 수사가 진행되었다. 감사원에도 방산 비리 감사를 위한 국(局) 단위의 감사단이 구성되었고, 기무사 등 국방 내부 수사 및 조사기관도 경쟁적으로 방산비리 척결을 위해 뛰어들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후 방산 비리 수사는 떠들썩했던 시작과 비교하면 초라한 결과로 마무리됐다. 전직 해군참모총장, 합참의장 등 관련자 수십 명이 구속 기소됐지만, 재판 결과 무죄 판결 비율이 50%에 달했다. 통상 일반 형사 사건의 재판 무죄율이 2~4%인 점을 감안하면, 무리한 수사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유죄 판결도 대부분 배임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무리한 수사로 극심한 고통을 받은 것은 방사청 직원들이었다. 한창 수사와 감사가 극에 달했던 시기 방사청 직원들은 거의 대부분 최소한 참고인 진술 형태로라도 수사와 감사를 한 번씩은 받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방사청의 사업 및 계약관리 업무에 참여하는 직원 2.5명당 1명의 수사관(감사 및 조사관 포함)이 투입돼 함께 출근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함께 퇴근하는 일상이 수년간 반복되었다. 경험자들은 수긍하겠지만, 공공업무에 종사하면서 참고인의 형태로라도 수사 감사 기관에 한 번이라도 불려가면 수 시간에 걸친 반복된 질문 등으로 이른바 '멘탈붕괴' 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그 여파는 적어도 2주는 이어진다.

     

    서서히 제 모습 찾은 방산업계...강력한 수출 드라이브 걸다

    당시 분위기는 직원들이 비리를 저질렀다는 전제하에 취조하는 수사 감사관들에게 자신이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이었다. 안보 분야의 한 축인 방위사업을 추진하는 사람으로서 한 치의 방산 비리도 있어서는 안 됨을 분명히 인정하고 강조한다. 청렴한 방위사업 추진이 사업의 효율성과 생산성도 보장한다는 소신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강직하게 일한 직원들을 포함하여 모두가 비리 집단으로 낙인찍히고, 전방위적인 수사 감사의 대상이 되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2017년 정부과천청사의 방위사업청으로 직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7년 정부과천청사의 방위사업청으로 직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당시 필자를 비롯하여 많은 직원들은 방사청이 비리 집단으로 낙인찍히는 상황에서 각자 업무에 대한 자부심이 추락했고, 병적인 자괴감까지 느끼는 심각한 상태였다. 당시 방사청 직원들은 외부업무를 마치고 택시를 타고 사무실로 복귀할 때 “방위사업청으로 가주세요”라고 말하지 못하고, 인근에 있는 “용산고로 가주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그간 악마화됐던 방산 비리는 방산 분야 전체가 아니라 일부 국외도입 사업에서 발생한 것으로 평가되면서 전방위적인 수사·조사·감사는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대통령 주관 방위산업진흥대회가 열리는 등 방산업계가 서서히 제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내부 출신으로 방사청장이 된 필자는 방산 수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게 된 것이다. 이에 방사청 직원들은 자신이 청장으로 임명된 것처럼 즐거워하였고, 자발적으로 다양한 방산 수출 방안을 제시하였다.

    강은호 전북대 교수(전 방위사업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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